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 – 1650)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과학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는 이전 철학자들의 권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으며,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인용문 중 하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입니다.
17세기 유럽은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중세의 계층 질서도 무너지고 천동설 대신 지동설이 등장했습니다. 과거의 질서가 무너진 상태에서 지식인들은 진리의 존재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졌고 데카르트는 기존 진리의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수학만이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모든 것은 수학으로 변환된다(with me, everything turns into mathmatics).”라고 했습니다. 데카르트는 하느님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철학의 한가운데 영과 무한을 위치시켰습니다. 그의 철학에서 하느님은 무한대를 의미하며, 무(0)는 자신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이것을 수학적 표현으로 바꾸면 어떤 수든지 0과 만나면(곱해지면) 본래의 모습을 잃고 0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현대 수학적 관점에서 상수를 무한대로 나누면 0에 근사하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지도 앱이나 네비게이션을 이용해 우리가 가고자 하는 장소의 위치를 찾습니다. 이것은 GPS(Gloval Positioning System,위성에서 보내는 신호를 수신해서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계산해 주는 시스템)에 있는 좌표 기술 덕분입니다. 좌표는 종이 지도 시절부터 지도가 발전하는 데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지도앱에 나타나는 지도는 2차원 또는 3차원 좌표 위에 그려집니다. 좌표 위의 각 점에 그곳이 산인지 바다인지 도로인지 건물인지 정보를 입히고 두 점 사이의 거리를 계산하여 장애물을 피할 방법을 안내해 줍니다. 이런 좌표와 순서쌍을 처음 사용한 수학자가 바로 데카르트입니다. 그는 자신의 책 ‘기하학’에서 처음으로 좌표와 순서쌍을 언급했습니다.
데카르트가 직교 좌표계를 도입하면서 수학 특히 그리스 시대에서 머물고 있었던 기하학은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고안한 직교 좌표계는 이전까지 독립적으로 다루어졌던 대수학과 기하학을 체계적으로 융합시켜 자신 이후의 뉴턴역학을 비롯한 근대 수학과 과학의 발전에 바탕이 되었습니다. 데카르트의 직교 좌표계는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유클리드의 기하학적 공간을 대체하였고 그 결과 새로운 '해석기하학 (Analytical Geometry)'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해석 기하학'이란 기하학적인 도형이나 길이, 넓이 등을 좌표평면에 나타내어 수학적인 식으로 바꾸어 나타내는 학문으로 점이나 직선, 원, 직사각형, 정사각형, 타원, 곡선 등의 도형을 좌표평면 위에 나타냄으로써 도형을 식으로 나타낼 수 있게 해주고, 정확한 모양과 길이 등을 정하고 측정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때문에 직교 좌표계를 두고 'Cartesian coordinate (데카르트 좌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후 뉴턴이나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좌표계에 기초한 대수적 함수의 개념이 데카르트에 의해 이미 도입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사항은 1637년에 출간한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서는 미지수를 현재와 같이 ( x, y, z )로 표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데카르트가 방정식에 미지수 X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의 수많은 글 중에서 왜 특히 X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선 다양한 가설이 제시되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확실히 확인된 것은 없습니다. 일부 설에 따르면, 인쇄소에서 가장 많이 남는 알파벳이 X였기 때문에 인쇄공이 이를 추천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데카르트가 미지수를 문자로 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전에는 '어떤 수'를 나타내는 방법이 나라마다 다르게 사용되었지만, 데카르트의 X 사용은 세계의 수학 언어를 통합시키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더불어 이는 미지수의 계산을 훨씬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이는 수학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돌파구였습니다.
데카르트가 좌표평면이라는 혁명적인 개념을 발명한 일화는 꽤 흥미롭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1618년, 역사적으로 유명한 30년 전쟁이 발발했을 때 시작됩니다. 이 전쟁이 발발하자 데카르트는 군에 입대하여 병사로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발명의 시작점은 어느 날, 그가 막사 안의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순간이었습니다. 천장은 격자무늬로 되어있었고, 그는 그 위를 날아다니는 작은 파리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파리가 천장 위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이를 수학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이 호기심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파리의 위치를 숫자의 순서쌍을 도입하여 좌표 개념으로 표현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이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점과 도형을 수학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도형을 수나 식으로, 수나 식을 도형으로 변환하여 표현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이는 수학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습니다.
또한 데카르트는 좌표에 0 이하의 수를 표현하기 위해 -1, -2, -3, -4 등의 음수를 최초로 도입함으로써 음수에 대한 개념을 구체화하였습니다. 이는 수학적 논리와 표현 방식의 한계를 넓히는 중요한 발전이었습니다.
《방법서설》(Discourse on Method)이라는 중요한 작품에 포함된 《La Géométrie》(1637)라는 소논문은 수학의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이 논문에서 그는 혁신적인 발견을 했는데, 그것은 곡선에 대수 방정식을 부여하는 새로운 방법이었다. 그의 이 방법을 통해, 모든 원추곡선을 단 한 종류의 2차 방정식으로 표시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이것은 수학의 역사에 빛나는 성과 중 하나이다. 또한 그는 숫자(밑) 위에 작은 숫자(지수)를 적는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복잡한 거듭제곱을 간단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창출하였다. 이는 그의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이다.
데카르트는 그의 수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상당히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무거운 물체가 물속에 들어갔을 때 수면의 높이 변화를 나타내는 대수적인 공식을 제안하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수학적 인식력과 창의적인 사고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또한, 그는 음악과 수학의 연관성을 탐색하였으며, 그의 연구를 통해 어떻게 수학이 류트의 음정을 맞추는 데에 정확하게 응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그는 진공 상태에서 물체가 낙하할 때 가속하는 속도를 예측하는 방법을 고민하였습니다. 이는 물리학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와 이론적 배경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연구 결과는 그의 시대를 넘어서 우리 시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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