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가장 저명한 수학자로 알려진 온하르트 오일러(1707-1783)는 스위스에서 태어나서 바젤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그의 대부분의 생을 독일 베를린, 프로이센 왕국, 그리고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냈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논리학자, 그리고 공학자였다.
오일러는 미적분학, 위상수학, 해석적 수론, 그래프 이론 등 수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그는 함수 기호인 f(x)를 1734년에 처음으로 도입하는 등의 기여를 했다. 이를 통해 그는 수학적 표현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또한, 그는 '오일러 항등식'이라고 불리는 공식을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 공식은 그의 이름을 딴 것 중 하나로, 수학자들 사이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으로 꼽히곤 한다. 오일러는 또한 광학, 천문학, 유체역학, 음악 이론 등의 분야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오일러는 약 92권의 전집과 866편에 달하는 논문을 통해 다른 어떤 수학자보다도 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다. 이는 그의 엄청난 생산성과 헌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현대 수학 용어와 표기법의 대부분을 창안했으며, 기하학, 미적분학, 삼각법, 대수학, 정수론 등 다양한 주제에서 중요한 발견과 발명을 했다.
오일러의 이름은 많은 수학 개념에 불리며,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상수가 두 개인(오일러-마스케로니 상수와 오일러 상수) 유일한 수학자이다. 이는 그의 수학에 대한 엄청난 기여를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일러는 수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지며, 그의 업적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연구되고 있다.
그는 현대의 삼각함수 표기법을 도입하였으며, 이는 수학의 여러 분야에서 필수적인 도구로 자리잡았습니다. 자연로그의 밑을 e(이를 오일러 수라고도 합니다.)로 표기한 것 역시 그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입니다. 그는 수열의 합을 나타내기 위해 그리스 문자 Σ(시그마)를 사용하였고, 허수 단위를 i로 표기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수학적 표현의 일관성과 간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1735년, 오일러는 멱급수를 이용하여 바젤 문제를 해결하였는데, 이는 그의 뛰어난 수학적 직관력과 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그는 1741년에 바젤 문제에 대한 더 정교한 증명을 제시하였습니다.
오일러는 또한 지수함수와 로그함수를 해석적으로 정의하였고 로그함수를 멱급수 꼴로 표현하는 방법을 발견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발견은 복잡한 수학적 개념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음수와 복소수 영역으로 로그함수의 정의역을 확장하였고, 이를 통해 로그함수의 이해와 활용을 더욱 확장하였습니다. 또한 지수함수의 정의역도 복소수까지 넓혔습니다. 그의 이런 노력은 오일러 공식을 발견하고, 삼각함수와 지수함수의 관계를 나타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오일러는 사차방정식에 대한 새로운 풀이법을 제시하여 그의 수학적 통찰력을 보여주었으며, 감마함수를 도입하여 초월함수의 이해를 더욱 향상시켰다. 그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는 수학의 복잡성을 감소시키고 이해를 돕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그는 복소수 극한의 적분을 계산하는 방법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복소해석학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접근법은 복잡한 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변분법이라는 미적분학의 새로운 분야를 창시하였다. 이는 오일러-라그랑주 방정식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는 수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오일러는 정수론 분야의 문제에 대해 해석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해석학과 정수론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의 수학을 합쳐 해석적 수론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켰다. 또한 초기하함수, 쌍곡선 함수에 대한 이론을 개발하였으며, 연분수에 대한 해석적 이론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그는 수학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였다.
그는 조화급수가 발산함을 이용하여 소수의 무한성을 증명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소수의 분포에 대한 중요한 이해를 제공하였다. 또한, 그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석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소수의 분포에 대해 알아내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오일러의 업적은 결국 소수 정리로 발전하였다.
오일러는 크리스티안 골드바흐라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학술원의 동료에게 큰 영향을 받아, 수학 중에서도 특히 정수론에 강렬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정수론의 이론을 깊게 연구하면서, 그의 많은 초기 업적들은 페르마의 연구에 크게 기반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일러는 특히 페르마의 몇 가지 핵심 아이디어들을 발전시키거나, 때로는 반증하여 그의 고유한 이론을 구축하였습니다.
또한, 오일러는 소수의 분포에 대해 해석적으로 접근하였으며, 이를 통해 소수의 역수의 합의 발산성을 증명하였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리만 제타 함수와 소수의 관계를 발견하였고, 이는 이후에 리만 제타 함수에서의 오일러 곱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일러는 또한 페르마 소정리, 뉴턴 항등식, 페르마 두 제곱수 정리를 증명하였고, 이는 라그랑주 네 제곱수 정리를 증명하는 데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양의 정수 n에 대해 n과 서로소인 1부터 n까지의 정수의 개수를 나타내는 오일러 피 함수 φ(n)를 만들었고, 이 함수를 사용하여 페르마 소정리를 일반화한 오일러의 정리를 증명하였습니다.
오일러는 완전수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짝수 완전수와 메르센 소수가 일대일 대응 관계에 있음을 증명하였다는 사실은 그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오일러는 이차 상호 법칙을 추측하였으며, 이 법칙은 이후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증명하였습니다.
1772년에 오일러는 2의 31제곱과 1의 차를 이용해 2,147,483,647이 메르센 소수임을 증명하였고, 이는 1867년까지 알려진 가장 큰 소수로 남아있었습니다. 이러한 오일러의 연구는 그가 얼마나 탁월한 수학자였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1735년, 수학자 오일러는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라는 도시에 존재하는 독특하고 복잡한 문제, 즉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는 프레겔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도시로, 이 강은 도시를 4개의 부분으로 나누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4개의 부분은 총 7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제기된 문제는 각 다리를 딱 한 번씩만 건너면서 처음 시작한 위치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오일러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그러한 길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이 획기적인 발견은 그래프 이론의 시초가 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는 복잡한 현상을 수학적으로 표현하고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일러의 이러한 업적은 그가 그래프 이론의 창시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오일러는 1752년에 오일러의 다면체 정리라 불리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식, V-E+F=2를 발견하였는데, 여기서 V는 다면체의 꼭짓점 개수, E는 다면체의 모서리 개수, F는 다면체의 면의 개수를 나타냅니다. 이는 그의 탁월한 수학적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오일러는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분석적 접근 방식을 적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이에는 베르누이 수, 푸리에 급수, 오일러 수, 자연로그의 밑, 원주율, 연분수와 적분 등의 다양한 수학적 개념 및 기법이 포함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미분을 물리학적 문제에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고, 수치 근사의 향상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오일러-마스케로니 상수를 도입하여 미분방정식의 사용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오일러는 수학적 아이디어를 음악에 응용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1739년에 음악 이론이 수학의 한 분야로 통합되기를 바라면서 《Tentamen novae theoriae musicae》를 저술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창조적인 아이디어의 한 예로서, 그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음악가에게는 너무 수학적이라는 이유로, 또 수학자에게는 너무 음악적이라는 이유로 폭넓은 관심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시각 장애인이 된 후 영국 해군이 태양, 달, 지구의 위치를 계산하는 문제를 냈는데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대신 근사치를 구하는 방법을 찾아내 배의 위치를 km 단위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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