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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누구나 한 번 쯤 들어본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수학 업적

by 헤사부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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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 (495 BC, 에게해 동부의 그리스 섬인 사모스( Samos )에서 태어남.)는 고대 피타고라스주의의 창시자로서 이오니아의 그리스 철학자였습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단순한 개인적인 성취를 넘어서며, 그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이후의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하였고, 그들을 통해 서구 일반의 철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그의 수학적 발견은 오늘날까지도 중학교 수학 교육의 핵심 부분입니다. 더불어, 그는 다양한 형태의 정다면체 5개를 발견하였으며, 이는 기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피타고라스의 조율 이론은 음악 이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그의 비례 이론은 수학적 상대성의 개념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지구의 형태가 구 형태라는 개념을 제시하였고, 이는 우리가 오늘날에 알고 있는 지구의 진정한 형태를 처음으로 인식한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또한 그는 아침 별과 저녁 별이 동일한 천체, 즉 금성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러한 발견들은 천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업적은 그의 학문적 영역을 넘어서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학문적 사고는 철학적, 수학적, 과학적 발견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그의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학에서 '피타고라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피타고라스의 정리'일 것입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직각 삼각형에서 다른 두 변의 제곱의 합은 빗변의 제곱과 같다.'라는 간단한, 그러나 굉장히 중요한 수학의 원리입니다. 이 정리는 피타고라스보다 수 세기 전에 이미 바빌로니아인과 인도인에 의해 알려지고 사용되었지만, 피타고라스는 이 원리를 그리스인에게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 수학 역사가들은 피타고라스 또는 그의 학생들이 이 원리에 대한 첫 번째 증명을 구성했을 수도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전기 작가들은 그가 또한 5개의 정다면체를 최초로 확인한 사람이며, 비율 이론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업적들은 피타고라스가 그의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 수학자였는지를 보여줍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근본적으로 수학의 원리가 모든 것의 원리라고 믿었으며,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수비학을 집중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들의 철학에 따르면, 모든 것은 숫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봤습니다.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학파는 실제적인 적용이 전혀 없이 순수하게 신비주의적인 이유로만 수학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숫자 중 하나는 1(모나드)이었는데, 이는 모든 것의 기원을 나타냅니다. 또 다른 중요한 숫자는 2(다이드), 물질을 나타내는 심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숫자 3은 시작, 중간, 끝이 있는 "이상적인 숫자"였습니다. 이는 평면 삼각형을 정의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점의 개수였기 때문이었고, 이를 기호로 존경했습니다.

또한, 숫자 4는 사계절을 의미했으며, 숫자 7은 행성의 수와 거문고의 현의 수를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홀수를 남성의 상징, 짝수를 여성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특히 숫자 523의 합이기 때문에 결혼을 상징한다고 믿었습니다.

10은 그들에게 "완전한 숫자"로 간주되었으며, 피타고라스학파에서는 10보다 큰 그룹으로 모이지 않음으로써 이를 존중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4줄의 삼각형 모양을 고안하여 완전수 10을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사각형을 가장 신비로운 중요성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현대 학자들은 이러한 수비학 가르침이 피타고라스 자신에 의해 개발되었는지, 아니면 후기 피타고라스 철학자 크로톤의 필로라우스에 의해 개발되었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란은 피타고라스학파와 그들의 수비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심화시킵니다.

음악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기여는 매우 중요하며, 그의 발견은 음악에서 조율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발견에 대한 전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언젠가 피타고라스가 대장간을 지나가던 중, 그들이 사용하는 망치가 모루에 부딪히는 고유한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 소리는 그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었고, 그는 음표가 수학 방정식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발견했습니다.

이 망치 소리가 아름답고 조화롭다는 것을 깨닫자, 그는 대장간으로 달려가 망치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실험은 망치를 칠 때 연주되는 곡이 망치의 크기에 정비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음악은 수학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설을 잘 보여주는 목판화 조율 및 피타고라스 해머는 이러한 과정을 네 가지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오른쪽 위 장면에서는 대장장이들이 망치로 모루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왼쪽 위 장면에서는 "피타고라"라는 이름이 적힌 남자가 다양한 크기의 종과 다양한 양의 액체가 담긴 잔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종과 잔에는 각각 라벨이 붙어 있습니다.

왼쪽 아래 장면에서는 "피타고라"가 다시 한번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다양한 길이의 인상적인 코드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모든 코드에는 숫자 라벨이 붙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아래 장면에서는 "Pitagora""Phylolavs"라고 표시된 다른 남자가 auloi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천문학에서는 피타고라스와 그와 동시대인 엘레아의 파르메니데스가 지구가 구형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과학적인 사고 방식과 철학적인 접근을 통해 이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지구의 기후를 5개의 구역으로 나누는 신념을 첨예하게 제시하였으며, 이는 지구의 다양한 기후 조건과 영향력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샛별과 저녁별이 동일한 천체, 즉 현재 우리가 금성이라고 알고 있는 천체임을 최초로 발견하였습니다.

예술과 건축 분야에서는 BC 6세기에 피타고라스학파의 수 철학이 그리스 조각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리스의 조각가들과 건축가들은 미적 완벽함에 대한 추구를 통해 이들의 작품에 수학적 관계를 도입하였으며, 이를 통해 그리스 건축 질서에서는 모든 요소가 수학적 관계에 의해 계산되고 구성되도록 하였습니다. Rhys Carpenter는 이러한 접근 방식에 대해 2:1의 비율이 "도리아식 순서의 생성 비율이며, 헬레니즘 시대에는 일반적인 도리아식 열주가 음표의 리듬을 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에 따라 설계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진 것은 포르타 마조레 대성당(Porta Maggiore Basilica)입니다. 이 건물은 로마 황제 네로의 통치 기간 동안 피타고라스의 비밀 예배 장소로서 건설되었습니다. 대성당의 후진은 동쪽에 위치하여 떠오르는 태양을 존중하였고, 아트리움은 서쪽에 위치하였습니다. 또한, 건물의 모든 부분은 피타고라스 수비학에 따라 설계되었습니다. 피타고라스학파에서는 흰색을 신성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성소 내부는 거의 완전히 흰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판테온도 피타고라스 수비학을 바탕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이 사원은 원형 계획, 중심축, 반구형 돔 및 네 가지 기본 방향에 대한 정밀한 정렬을 통해 우주의 질서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철학을 반영하였습니다. 돔의 꼭대기에 있는 단일 눈은 모나드와 태양신 아폴로를 상징하며, 안구에서 뻗어 나온 28개의 갈비뼈는 달을 상징합니다. 이는 28이 피타고라스 음력의 달 수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갈비뼈 아래에 있는 다섯 개의 격자 고리는 해와 달의 결혼을 상징하며, 이는 피타고라스의 천문학적 접근 방식과 그의 수학적 철학을 반영한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는 피타고라스가 높이 추앙받는 인물로, 그의 업적이 7대 교양 과목 중 수학과 음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중요성은 수많은 중세 미술 작품과 조명 원고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샤르트르 대성당 정문의 구호 조각에도 그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그는 "황금 시"라는 작품을 통해 그의 과학 및 수학 이론의 일부를 세상에 보여주었으며,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슬람 학자들은 피타고라스의 문헌을 번역하고 전파함으로써 그의 생존과 그의 이론의 넓은 접근성을 보장했습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아이작 뉴턴이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을 굳게 믿었으며, 그는 우주의 수학적 조화와 질서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을 근거로 자신의 이론을 구축했습니다. 뉴턴은 다른 사람의 공로를 인정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만유인력 법칙의 발견에 있어서는 피타고라스의 공로를 굳게 인정했습니다. 그 외에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과학자가 "논리적 단순성의 관점을 자신의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효과적인 도구로 생각하는 한 플라톤주의자이거나 피타고라스주의자"일 수도 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렇게 피타고라스는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론과 가르침이 과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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